봄은 만물이 다시 소생하는 계절이다. 희망의 계절이다. 비발디의 사계 중에서도 봄의 선율은 가장 활기차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로 시작하는 ‘봄이 오면’은 화사한 봄볕 아래 저절로 뇌리에 울리며 마음이 환해지는 우리 귀에 가장 익숙한 가곡 중의 하나다.
원자력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봄은 아쉽게도 마냥 소생의 기쁨과 따뜻한 햇볕을 만끽할 수있는 시간이 아니다. 원전의 본격적인 이용이 시작한 후 최초의 중대사고인 TMI 사고는1979년 3월28일에 부적절한 정비 작업으로 증기발생기 급수계통에 문제가 생기면서 발생했다. 그로부터 7년 후,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인 체르노빌 사고는 안전규정을 무시한 무리한 시험으로 1986년 4월26일 발생했다. 25년이 지나 체르노빌의 악몽에서 원전 산업계가 벗어나려는 즈음에 후쿠시마 원전은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초토화됐다
봄은 원자력에 잔인한 계절 - 원전 중대사고는 모두 봄에 일어났다사고의 역설 – TMI
TMI 사고는 역설적으로 원전의 안전성을 증명한 사고다. 원자로는 망가졌고 전력회사는 큰손실을 봤지만 일반 대중에의 피해는 없었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 사고는 그 영향과 상관없이 언제나 센세이셔널하다. 원전은 거대 산업이고 원자력 기술은 어딘지 모르게 비밀스러운 느낌을 준다. 영화와 드라마에 좋은 소재가 될 수밖에 없다. 2022년 넷플렉스는 ‘Meltdown: Three Mile Island'를 방영했다. 다큐멘터리 전문 감독인 Kief Davidson2)의 작품으로 다큐멘터리 형식의 미니 시리즈로 방영됐다. ’Meltdown'은 펜시베니아주 미들타운 시에 울려 퍼지는 대피 사이렌 소리에서 시작한다. 이어서 어린아이의 모습이 흡사 TV 뉴스 인터뷰 장면처럼 나오고 ‘꿈을 꿨니?’라는 질문에 ‘스리마일 아일랜드’라는 대답에 이어 펜실바니아 숲길을 운전하는 중년의 남성이 40년의 ‘악몽’이라며 독백하는 장면으로 TMI 사고를 묘사한다. 내부 고발과 사건의 진상을 둘러싼 원자력 산업과 기술의 폐쇄성에 대한 음모론에 가까운 묘사로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다크 다큐멘터리의 특징도 빠지지 않는다.‘Meltdown'을 관통하는 메세지는 원전과 원전 산업에 대한 비판이다. 원전 사고는 일어나 지 않는다고 위험을 경시하고 방사선 피폭을 걱정하는 주민들에게 명확한 정보를 공개하지않는다는 원전 산업의 폐쇄성이 비판의 초점이다.
TMI 사고는 일반 대중에 실질적 위해는 없었으나 미국 원자력 산업의 기세를 꺽는데 충분했다. 한 때 1000기 도입을 걱정하던 USNRC는 규제강화에 나섰고 때마침 미국은 1970년대 에너지 위기를 벗어나 1980년대에는 에너지 과잉의 시대에 접어든다. 1984년까지 51기의 원전이 취소됐고 미국 원전산업은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TMI 사고가 원전 산업을 문 닫게 하지는 못했다. 1979년4월 TMI 사고를 표지 뉴스로 내보냈던 타임 매거진은 사고 30주년을 맞아 TMI 사고를 돌아봤다. 기사의 결론은 TMI 사고로 사람은 물론 원전 산업도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전은 사고의 교훈을 받아들여 수 많은 개선을 통해 훨씬 더 안전하게 되었고, 신기술로 발전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TMI 사고는 미국 원전사업자협회(INPO)를 창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INPO는 안전을 위한 다양한 지침, 절차를 개발하고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확신시켰다. 오늘날 원전 에서는 당연시 되는 구체적인 사고 대응 절차를 명시한 비상운전절차서가 개발된 것도 TMI 사고의 교훈이다. 사고가 발생한 TMI 2호기의 쌍둥이 원전인 TMI 1호기는 2019년 45 년의 운전을 훌륭히 마치고 은퇴했다. 마지막 운전 주기에 노장의 투혼이랄까, TMI 1호기는 709일 무고장 운전을 기록했다.
1979년 TMI 사고가 났을 때 원전에 가장 근접한 도시인 펜실바니아주 미들타운시의 시장이었던 Robert Reid는 TMI 1호기 은퇴에 스미스소니언 매거진과의 인터뷰3)에서 그때를 회 고하고 지금의 심경을 밝힌다. Robert Reid는 사고 직후 TMI 1호기에 대한 주민투표가 있었고 이때 발전소 폐쇄 여론이 운영 여론보다 2배나 컸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다시 투표한다면 그 결과는 다를 것이라고 심경을 밝힌다. 그는 40년동안 발전소는 훨씬 좋은 이웃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또한, 펜실바니아주의 지역 신문은 TMI원전이 위치한 펜 실바니아 런던데리타운의 군수4)인 Anna Dale의 기고를 실었다. Annal Dale은 TMI 1 원전의 영구폐쇄를 아쉬워하며 ’우리는 위대한 이웃을 잃었다‘라고 썼다5). 드라마 ’Meltdown'은 아쉽게도 이런 TMI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인간의 문제 - 체르노빌체르노빌6) 사고는 실제로 원전 사고가 인명과 환경에 영향을 끼친 최초의 사고다. TMI와는 비교가 안 되게 세계 원전 산업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미국 최대 케이블 방송인 HBO와 영국의 인터냇 방송통신사인 Sky UK는 2019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주제로 TV 드라마를 만든다. 드라마 ‘체르노빌’은 스웨덴 출신의 영화 감독이자 음악가인 Johan Renck에게 미국 방송계의 아카데미 상인 에미상 드라마 감독상 수상의 영광을 안겼다.
‘체르노빌’은 잘 만든 드라마다. 불타는 원전을 언덕에서, 다리 위에서, 마을사람들이 구경하는 장면은 당시 구소련에서 얼마나 주민 보호라는 개념이 없었는지를 보여준다. 드라마의 극적 요소로서 희생과 사랑, 애절함도 담겨있다. 방사선 과피폭으로 서서히 죽어기는 소방대원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을 지키는 처절하지만 감동스러운 장면을 보여준다. 드라마이기에 조금은 공포스러운 연출도 있다. 사람들은 떠나고 마을에 남은 동물들을 살처분하라는 명령을 받은 어린 병사와 주인이 떠난 집에 홀로 남겨진 강아지가 눈을 마주치는 장면은 애처러움을 넘어 또하나의 비극이다. 그럼에도 ‘체르노빌'은 과학적으로 잘 다듬어진 드라마다. 모두가 침묵하는 사고 원인에 대해 전문가의 양심으로 등장하는 Valery Legasov 박사는 체르노빌 사고의 진실을 밝히는 법정에서 체르노빌 원전이 제어불능에 빠지게 된 물리적 배경으로 원자로 제어의 핵심인 빈응도(Reactivity)를 명쾌하게 설명한다7).
‘체르노빌’의 에필로그에서 ‘체르노빌’을 쓴 극작가이자 프로듀서인 Craig Mazin은 ‘체르노빌’은 원전 사고에 관해 쓴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무슨 이야기인지 Craig Mazin은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면 자만심으로 사고를 치고도 책임을 모르는 뻔뻔한 이들, 은폐와 책임 전가에 급급한 이들, 자신 보다 남을 위해 사고 수습에 나서는 용기있는 이들과 그들의 사랑하는 자들, 불이익을 무릅쓰고 진실을 밝히는 나약하지만 진실한 자들의 이야기다. 이것이 드라마 ‘체르노빌’의 본질이 아닌가 한다.
체르노빌 사고는 RBMK 원전의 근본적인 결함에도 있지만 결국 인간의 문제다.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되는 사고임에는 틀림없다. 드라마 ’체르노빌‘은 사고의 비극과 이를 극복하려는 헌신은 물론 원전 사고를 감추려는 구 소련 당국과 이에 맞서 사고의 원인을 찾고 다시금 반복되지 않게함으로써 치유의 길을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체르노빌 사고 후 에 중대사고는 발생할 수 있는 사고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졌으며 중대사고 현상에 관한 연구를 통해 대처 방법을 수립하여 오늘날 모든 원전에 ’중대사고관리지침서‘를 필수화하는 계기가 된다. 또한 체르노빌 사고를 계기로 세계원전사업자협회(WANO)가 설립되었으며 1989년 모스크바에서 창립총회를 가졌다. WANO는 세계 원전사업자간에 운전 경험과 기 술을 교류하고 상호 Peer Review를 통해 전세계 원전의 안전성 향상을 도모 하고 있다8).
참고: 원전 사고 후 장기적인 방사선의 생태계 영향에 관해 무시할만한 영향이라는 주장에서 공포스러운 정도라는 주장까지 논란이 있다. 체르노빌 사고 발생 30년 후 내셔널 지오 그래피가 탐사한 체르노빌 지역의 늑대를 중심으로 한 포유류의 생태계를 관칠한 조사는 적어도 조사 시점까지는 방사선 피폭의 영향을 볼 수 없었고 오히려 야생 동물의 개체 수 는 증가했다고 한다9).
사고는 누가 막는가 - 후쿠시마체르노빌 사고 후 원전 산업은 중대사고에 대비한 원전을 개발한다. 중대사고관리지침과 안전설비 보강으로 기존 원전들의 중대사고 대처 능력을 향상시켰지만 설계 단계부터 중대 사고를 고려한 원전을 개발한다. 이른바 제3세대 원전이다. 우리나라의 APR1400도 그중의 하나다. 신형원전으로 무장한 원전 산업은 2000년대 들어 재기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하필 그 때 발생한 것이 후쿠시마 사고다. 체르노빌 사고 후 4반세기만이다.
’더 데이스(The Days)‘는 넷플렉스가 2023년 내놓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대상으로 한 8부작 드라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가 원전을 덮치는 장면부터 중대사고의 발생, 사고의 수습을 위한 발전소 현장, 본사 및 정부와의 삼각관계 속의 혼란과 갈등이 요시다 소장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더 데이스‘는 사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토오전력10) 본사 관리자와 일본 정부 관료들의 무능과 무책임, 그리고 이에 대비해 사고를 수습하는 현장 직원들의 처절한 노력과 요시다 소장의 리더쉽11)을 대조해 보여준다. 드라마는 정보와 소 통의 부재도 꼬집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의 상황에 대해 토오전력 본사는 물론 일본 정부와 원자력안전 전문기관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사태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던 것으로 묘 사된다12). 여기에는 원자력전문가의 무지한 안일함도 한 몫을 한다. 드라마에서도 묘사되지만 2012년 고단샤13) 논픽션상을 수상한 ’멜트다운‘에서 총리의 폭발 가능성 질문에 마다라 메 원자력안전위원장은 수소 폭발은 없을 것이라고 답한다14).
사고를 수습할 최후의 수단으로 바닷물을 원자로에 주입하는 결정을 두고 발전소 현장과 토오전력 본사, 총리실은 혼돈에 빠진다. 토오전력은 총리실의 눈치만 보고 총리실은 해수 주입을 주저하는 사이에 요시다 소장은 해수 주입을 단행한다. 현장의 의견을 중시해야 한다고 하지만 막상 그런 일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발전소 상황이 악화되자 직원 대피조 치를 두고 현장, 본사, 총리실간의 혼란과 갈등은 극에 달한다. 요시다 소장은 필수요원을 제외하고 직원 대피를 결정한다.이를 전해 들은 총리는 대노하며 화상으로 현장과 연결된 회 의에서 철수는 안된다고 목숨을 걸고 발전소를 지키라고 한다 (본인도 목숨을 걸겠다고는 한다). 이때 요시다 소장은 갑자기 일어나 바지를 벗고 엉덩이를 긁는다. 그리고 각자 자리로 가 서 할 일을 하라고 한다. 백 마디 말보다 훨씬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장면이다15). 이미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자들에게 총리이건 사장이건 의미 없는 존재일 뿐이다.
’더 데이스‘는 후쿠시마 사고의 수습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요시다 소장을 비롯한 발전소 직원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체르노빌‘에서 목숨을 건 소방대원들과 후쿠시마 원전 직원들 의 결연한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16). 이를 참고했는지 프랑스 전력공사(EDF)는 후쿠시마 사고의 교훈으로 중대사고 대응팀17)을 만들었다.
’더 데이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요시다 소장은 ’재난을 후대에 알리는 것‘을 현장 책임자로서의 마지막 임무이라고 독백한다. 기록을 남겨 후대에 알리는 것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재난에 대처하는 지혜를 전수하기 위함이다. 원전도 마찬가지다. TMI, 체르노빌을 거치면서 사고의 교훈을 찾아 원전을 더 안전하도록 했다. 후쿠시마 후속 조치로 우리나라도 쓰나미 를 비롯한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다양한 안전 보강을 했다. 여러 안전성 향상 조치가 있었지만 그중 괄목할 개선은 자연재해와 같이 광역적인 재해에 대응할 수 있는 사고관리전략 의 도입이다. 발전차, 펌프차 등 이동식 안전설비를 구비하고 이를 사고대응에 포함한 것이다. 자연재해와 같이 발전소 전체에 영향을 주는 재해는 기존의 고정식 안전설비만으로 대 처하기 어려운 상황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모든 원전에 반영했다. 이는 TMI로 인한 비상운전절차, 체르노빌의 교훈으로 만든 중대사고관리지침에 이어지는 개선이다. 그런데 요시다 소장의 바램에 비추어 보면 후쿠시마 사고 후 일본이 세계적으로 원전 안전에 기여한 것은 아쉬운 점이 있다. 필자가 아쉽다고 하는 것은 이 전략을 일본이 제안한 것도 아니고 이 전략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한 점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18). 원전 안전협력의 측면에서 보면 INPO와 WANO가 TMI와 체르노빌 사고의 후속조치로 세워졌듯이 일본이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지역안전협력체제19) 구성에 나섰으면 유럽, 북미에 이 어 세 번째로 많은 원전이 운영 중인 동아시아지역의 원전 안전 수준을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했을 것이다.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1) 사고 발생 시 방사선 비상 대피가 있었고 약간의 방사선 누출이 있었으나 환경과 인체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평가되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Three_Mile_Island_accident)
2) 심장병 어린이들을 통해 아프리카의 열악한 의료 환경을 고발하고 휴머니즘을 보여준 다큐멘터리 ‘Open Heart'로 2013년 다큐멘터리 부문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
3) https://www.smithsonianmag.com/history/robert-reid-mayor-of-nearby-middletown-remembers-three-mile-island-nuclear-accident-180971636/
4) 영어로는 Supervisor이다. 지역의 안전, 환경, 교통 등을 관장한다. Township이 우리나라의 군 또는 읍과 유사한 행정자치 구역이라서인지 구글 번역에 군수로 나온다.
5) https://www.pennlive.com/opinion/2019/09/closing-of-tmi-today-is-an-absolute-shame-opinion.htm
6) 체르노빌 원전은 RBMK라는 러시아가 개발한 독특한 원전이다. 체르노빌 원전은 사고 당시는 구소련의 영역이었으나 현재 위치는 우크라이나 소속이다. 체르노빌 원전은 모두 4기가 있었으며
사고가 난 4호기 외에 나머지 3개 원전은 사고 후에도 길게는 14년 짧게는 5년을 더 운전하고 영구정지했다. 현재는 3기의 원전만이 러시아에서 운전되고 있다.
7) 원자로 반응도는 핵연료, 감속재, 냉각재의 온도, 밀도 등의 조건에 따라 원자로의 핵분열 반응이 변화하는 정도를 말한다. 레가소프는 반응도의 변화를 조절하는 인자들의 상호 반응을 ‘댄싱’이라
고 표현한다. 필자는 드라마 ‘체르노빌’의 이 장면을 강의에 활용하기도 한다.
8) 당시 구 소련은 철의 장막으로 불렸는데 WANO를 통해 원전 운영만큼은 국제사회에 정보 공개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9) 이 다큐멘터리의 요약본은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E-h15wX14po&t=21s). 최근의 미국의 Fox 뉴스 보도에 의하면 체르노빌 지역의 늑대들은 암 저항성이 더 좋아졌다는 보고도 있다
(https://www.fox29.com/news/chernobyl-mutant-wolves-cancer-resistance). 반면에 뉴욕타임즈가 유튜브에 올린 체르노빌 지역의 생태계 분석 리포트는 곤충과 조류에서 방사선
영향이 관찰되었다는 보고도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G-nwQBBfmc). 그러나 일부 유튜브 클립 등에서 보이는 기괴한 돌연변이는 공신력 있는 매체에서는 보고된 사례를 보지못했다.
10) 드라마의 원전 소유 전력사다. 도쿄전력을 의미한다.
11) 필자는 2014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원전이 거대한 화학공장처럼 변해가고 있다는 것과 (오염수 저장탱크 대문에 그렇게 보였다) 후쿠시마 사고를 수
습하는 본부 역할을 했던 면진중요동에 보존된 회의실이었다. 회의실 중앙의 탁자에 요시다 소장을 비롯한 당시 사고수습에 나섰던 간부들의 착석 자리에 명패가 세워져 있었다. 사고의 단계 단
계마다 힘든 결정을 내려야 했을 요시다 소장을 기억하고자 보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12) 드라마 제5화에서 총리가 TV를 보고 원전 수소폭발 상황을 파악하는 장면이 이를 묘사하고 있다.
13) 일본의 종합 출판기업이다.
14) ‘멜트다운’에서는 마다라메 위원장이 자신이 말한 것은 ‘원자로가 폭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지 원자로 건물 내의 수소폭발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 아니었다고 변명을 한다. 이로써 마다라메 위원장은 크게 신용을 잃었다고 한다. 실제로 후쿠시마 사고 당시 간 나오토 총리는 사고 전개에
대한 원자력전문가들의 분석에 실망한 나머지 원자력전문가 보다는 그 자신이 도쿄 공업대학 웅용물리학과에서 물리를 공부한 배경지식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과학자들의 조언을 많이 구했다고 한다. 이는 드라마에서도 후쿠시마 사고의 영향에 대해 총리의 지인으로 보이는 과학자(‘멜
트다운’에는 다마대 대학원의 다사카 히로시 교수라고 한다)를 불러 조언을 받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15) 후쿠시마 사고 대응에 일본 정부(총리실)과 본사 책임자들의 탁상공론적 지시에 반발하는 발전소 현장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수십 시간을 사무실에서 비상대기 해보았다면 왜 엉덩이가 가려운지 알 수 있다. 필자는 이 장면을 개인적으로 높이
평가한다. 미국 드라마였으면 아마도 ‘Fxxx'이라는 말로 대신했을 것이다.
16) 뉴욕 타임즈의 아시히 신문을 인용한 2014.5.20. 보도에 의하면 요시다 소장은 정부의 후쿠시마 사고조사에서 후쿠시마 제1원전 직원 중 90% 가량은 제2원전으로 근무지를 이탈했고(기사는 도망갔다고 표현했다) 10% 가량만 남아서 수습에 참여 했다고 한다. 그는 3월15일 2호기 원자로용
기 파손으로 인한 다량의 방사선 누출이 우려되어 방사선 준위가 낮은 지역에서 대기하라고 했지 제2원전으로 이동하라고 명령하지 않았다고 한다.
17) 공식 명칭은 불어로 FARN이고 영어로 번역하면 ‘Nuclear Rapid Intervention Force’ (원자력긴급개입팀)이다. 필자가 EDF 관계자에게 이 팀이 중대사고 전문가, 발전소 전문가 등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FRAN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돌아온 답변은 FRAN은 평시에는 소속
된 원전에서 일하다가 어느 원전에선가 사고가 나면 본부의 명령에 따라 집합해서 목숨을 걸고 현장에 가겠다는 서약을 한 직원들로 구성된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 답변은 중대사고라는 위급 상황에서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는 팀의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나 한다. EDF 홈페이지 설
명에 의하면 FRAN은 300명으로 구성되고 프랑스의 어느 원전이라도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 대응을 위해 24시간 이내에 투입되는 팀이라고 한다.
18) 광역재해에 대응하는 사고관리개념은 2001년 9.11 사태 시에 원전이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한 미국 원자력안전규제위원회가 먼저 요건화 했다. EDMG(Extensive Danage
Management Guideline)라고 한다. 후쿠시마 사고 후에 EDMG를 이행하는 사고관리 전략의 일환으로 미국 원자력협회(NEI)는 이동식 설비로 안전을 보강하는 FLEX 전략을 개발했다. 우리나라의
사고관리계획도 이 FLEX 전략 개념을 따른 것이다. 물론 후쿠시마 사고는 광역재해에 대응하는 사고관리개념이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계기가 되기는 했다.
19) WANO는 전세계 원전운영자 간 협력체이고 INPO는 미국 원전운영자만 회원이다. 유럽은 EURATOM과 WENRA(Western European Nuclear Regulators Association)라는 지역 원자력협력 체제를 갖고 있다.
에필로그: 원자력에 2024년의 봄은? 안전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원전은 대단히 강고한 시스템으로 안전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사고는 TMI처럼 사소한 정비 실수나, 체르노빌처럼 무지의 오만함으로 또는 후쿠시마처럼 뜻하지 않은 자연재해로 찾아올 수 있다. “늘 깨어 있으라“는 성경 말씀이 굳이 원전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안전‘이라면 딱 필요한 경구다. 그런데 하필 원전 사고는 모두 봄에 일어났다. 봄의 나른함에 또 벚꽃의 화려함에 원자력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은 취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우리는 우리의 원전뿐 아니라 우리 이웃에 있는 원전의 안전도 신경 써야 한다. 후쿠시마 사고는 일본에서 났지만, 그 피해는 우리 원전산업에도 컸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원자력에 종사하기 때문에 겪는 숙명이라면 숙명이다. 그렇다고 불평할 필요는 없다. 원자력은 사고를 딛고 더 안전하게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문명은 과학기술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 온 역사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기후변화라는 원전 사고와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위기에 맞서는 어벤저스들이 원자력에 종사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3월11일, 3월28일, 4월26일, 때만 되면 반핵주의자들은 원전의 공포를 들고나온다. 그러니 봄은 원자력 인들에게는 적어도 피곤한 계절이다. 하지만 원자력 인의 가치는 원전 사고가 있었기에 빛날 수 있는 것이다. 안전을 지키고 더 나은 원자력을 만드는 것이 원자력 인들의 가치인 것이다. 영국의 시인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그는 눈이 대지를 덮어 망각의 시간을 즐길 수 있었기에 역설적으로 겨울이 좋았다고 했다. 어쩌면 원자력계는 탈원전을 극복한 지금이 역설적으로 더 힘든 시간인지 모른다. 탈원전 시절에 민간 기업은 힘들었어도 공공기관은 도전적인 목표도 없었고 성과를 내라는 압박도 없었기에 겨울이라도 오히려 편안한 시간이었을 수 있다. 탈원전을 극복한 지금은 봄이다. 탈원전 5년 동안 한번도 안 하던 계속운전 심사를 매년 1기씩 완료해야 하고, 15년 만에 수출도 성공해야 하고, 해묵은 사용후핵연료 문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하며, 혁신형 SMR도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갈 길이 바쁘다. 피곤을 넘어 잔인할 정도로 힘들 수 있다.그러나 엘리엇이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한 것은 봄이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기 때 문이듯이 2024년의 봄은 잔인하도록 힘들더라도, 힘든 만큼, 5년 후, 10년 후에는 원자력학회 회원 여러분들의 ’봄‘이었다고 기억될 것이다.
마치며, ‘Meltdown: Three Mile Island'와 ’더 데이스‘는 이 글을 쓰는 2024년3월 현재 넷플렉스에서 볼 수 있다. ’체르노빌‘은 종영하였는데 유튜브에 10여개의 짧은 에피소드로 나눠져서 올라와 있다. 원자력학회 회원 여러분들도 주말의 휴식을 이용해서 한번 정주행 해볼 것을 강추한다. 드라마로서 보면 된다. 생각보다 재미있다. 물론 과한 장면도 있고, 생각해 봐야 할 장면도 있다.